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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4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 총평

 신카이 마코토 라는 인물은 "1인 제작 애니메이션" 이라는 충격으로, 청명하고도 아름다운 배경 작화 능력으로, 독특한 감수성이 가득 담긴 그만의 매력적인 작품들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온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값 만으로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주저없이 극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이 작품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지금까지의 그의 캐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신카이 마코토의 청명함은 어디로 갔나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구나 떠올릴 화사하면서도 청명한 색채감각, 창공을 수놓는 구름의 향연, 그러한 것들이 물론 이 작품에도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다른 사람이 그린 듯한', 그래서 영혼을 잃은 듯한 탁한 감각이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이 그린 걸까요, 아니면 신카이 마코토 본인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요. 이 작품의 비쥬얼은 통상의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색채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스토리 라인이 무너진 상태에서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을 의식한 듯 강박적으로 쏟아지는 디테일한 배경 미술들은 관객을 피곤하게 만드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 무너진 스토리라인

 작중에 주인공인 아스나는 이렇게 외치며 흐느낍니다. "나는 왜 여기에 온 걸까." 이 장면이 이 작품의 스토리가 처한 모든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주인공에게 앞으로 어떠한 상황과 시련이 다가올 것인지, 주인공이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지, 관객은 아스나와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것에 확연하게 감정이 이입되지 못한다고 봐야겠죠. 아스나는 목숨을 걸고 저승(?) 끝까지 찾아가서 슌을 살려내야 할 만큼 슌에 대한 강한 인연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아스나는 자신의 앞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끝이 어딘지를 알고 나아가는 반지원정대의 험난한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지만,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아스나의 모험길은 보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안은 스토리라인에 거듭해서 반복되는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콕 집지도 못하겠는) 우연적인 사건들은 "그래도 마무리는 괜찮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마저 처참히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무너진 스토리라인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관객이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어디까지 가면 결말일지를 알 수 없게 된 관객은 12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을 더욱 더 길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들을 빛내주었던 텐몬 씨의 배경음악도 스토리의 붕괴 앞에 그저 따로 겉돌 뿐이었습니다.

- 참신하지 못한 디자인

 "별을 쫓는 아이"라는 작품을 보는 내내,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인가, 아니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의 캐릭터와 사물들이 내내 시각을 괴롭힙니다. 나우시카의 테토와 거신병, 라퓨타의 비행석과 거대로봇, 모노노케히메의 사슴신, 지브리에서 지겹게도 되풀이한 소녀와 악한, 소녀를 돕는 소년의 구도, 중세유럽 풍의 판타지세계, 모든 것이 식상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참신하지 못한 것들이 "나 참신하지?" 하고 스스로를 어필하려는 자세입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요? 아무래도 이 작품에는 쉽게 알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가진 독특한 개성마저 버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국민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신카이 마코토 본인의 열망" 에 의한 것이었다면... 한여름 밤의 대실망 쇼가 되어버린 이 작품이 좀 더 올바른 방향에로의 전환점이 됐으면 합니다.



이 작품을 끝까지 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


Posted by 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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